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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환경의 의미
작성자 rlatjrwnd1

환경의 의미

「환경으로 살다가 환경으로 돌아간다.」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이 글은 서산대사의 임종게이다.

서산대사는 선조 37년 1월에 묘향산 원적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 뒷면에 이렇게 적어, 사명(四溟)과 처영(處靈) 두 제자에게 주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그대로 입적했다.

서산대사가 자신의 초상에 적은 이 글귀는 생사거래(生死去來)를 밝힌 것으로, 어떻게 있다가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너(渠)’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서산대사 자신의 초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너’로 상징되는 인식의 객체 전반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처하는 곳에 있어서 인식의 객체 전반이란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장흥 보림사에 ‘가지산문’을 개창한 신라의 보조스님이 이것을 열반 게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헌강왕 6년(880) 2월에 입적한 스님은, 제자들을 불러 앉히고 이렇게 말했다.

“나의 금생업이 다하여, 나무가 되고 흙이 될 것이니 너희는 잘 호지하여 게을리 함이 없게 하라”

보조스님은 이렇게 이르고, 곧 가부좌를 틀고 앉아 멸진정(滅盡定)에 들었다.

태양과 대기(大氣) 중의 산소와 물이 있는 지구에서 생을 얻은 인간은 태양, 산소, 물과 흙이 인연하여 생성해 낸 것으로 태양, 공기, 수분과 토양으로 살다가 다시 태양, 공기, 수분과 토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생(生)이란 근본적으로 환경과 따라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천지가 나와 같은 뿌리[天地與我一體], 만물이 나와 같은 몸[萬物與我一體]이라는 말이 환경과학의 결론임을 사람들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 동안 환경이 생(生)의 요건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생물은 환경 없이는 살수가 없다. 공기(산소)나 수분, 태양(열), 토양 중의 어느 한 가지만이라도 잃게 된다면, 지구상에 생존하는 어떠한 생물도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물체들이 개별화되어 있는 외곽의 내역(內譯)만으로 존립한다는 피상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신체라는 덩어리만으로 되어 있고, 이 신체는 신체의 외연(外緣)과 신체가 둘이 아님을, 생사를 통해 증명해 보인 것을 말했거나와 인간의 신체(모든 생물체가 다 포함되지만 본론의 대상이 인간의 업이므로 그 주체를 인간으로 축소하고자함)는 체형(體形)을 이루고 있는 외곽으로 한계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히 반복하고 있는 호흡 운동을 통해 공기(산소)를 마시고 사는 인간은 태양의 보호 없이, 그리고 수분이나 영양의 섭취를 필요로 하지 않고 신체를 유지해 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의 몸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 공간과 함께 있고, 부단히 대기를 마셔야 하므로 코구멍이 열려 있다. 또한 초목과 같이 땅에 뿌리를 박지 않고서도 인간이 땅에 발을 딛고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지구의 인력이 우리 몸을 붙잡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렇게만 살펴 보아도 인간의 신체가 그 신체만으로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공간과 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은 환경으로 삶[生]을 얻고 환경으로 살다가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환경은 곧 자기 신체의 외연(外延)이다. 이 사실은 명백하다. 대기가 차가우면 몸이 춥고 공기가 더우면 몸에서 땀이 나고 고통스럽다.

환경이 쾌적하면 인간의 정신이나 신체의 컨디션이 쾌활하고, 환경이 부적합하면 인간의 심신에 장애가 일어난다. 그런데 지금 지구 전체가 인간의 무지로 인해 인간이(또는 모든 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환경이 이렇게 변하면서, 인간의 신체들도 병들거나 사멸하고 있어, 인간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와 ‘너(넓은 의미로 환경)’을 둘 아닌 하나로 보는 불교의 깨달음이 관념의 것만이 아닌 현상계의 진실임이 이제 보편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